[인문어학] 김진형 북천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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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19-07-12 06:0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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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64년에는 시정의(定義) 폐단을 상소하였는데, 조대비(趙大妃)의 비위에 거슬린 구절이 있어 전라도 고금도(古今島)에 유배되었다.
1850년(철종 1)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,
1853년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(徐箕淳)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 남종순(南鍾順)에게 몰려 한때 명천(明川)으로 유배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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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북천가 전문 및 해석
1~10행
세상에 사람들아 이내 말삼 드러보소
과거를 하거들랑 청춘에 안이하고
오십에 등과(登科)하여 백수홍진 무삼일고
공명(公明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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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진형 ‘북천가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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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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Ⅰ.서론 1.작품 선정이유
시기 적절
약간의
호기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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Ⅱ.본론2. 김진형이란
김진형(金鎭衡/1801~1865)
1801(순조 1)∼1865(고종 2). 조선 후기의 문신. 종수(宗壽)의 아들이다.인문어학,김진형,북천가,인문사회,레포트
[인문어학] 김진형 북천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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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진형 ‘북천가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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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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Ⅰ.서론 1.작품 선정이유
시기 적절
약간의
호기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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Ⅱ.본론2. 김진형이란
김진형(金鎭衡/1801~1865)
1801(순조 1)∼1865(고종 2). 조선 후기의 문신. 종수(宗壽)의 아들이다.
1864년에는 시정의(定義) 폐단을 상소하였는데, 조대비(…(skip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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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문어학] 김진형 북천가
레포트/인문사회
순서
다.
1856년 문과중시에 다시 급제하였다.
1850년(철종 1)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,
1853년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(徐箕淳)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 남종순(南鍾順)에게 몰려 한때 명천(明川)으로 유배되었다.
1856년 문과중시에 다시 급제하였다.